불충의 나날

불충의 나날(5) / 즐거웠던 하숙생 시절의 추억

신천대로 2017. 3. 1. 09:47

 

 

 

 

 

 

 

혼자 도미유학 여정으로 서울대학에 들어선 나는

올라가지 말아야할 낭떠러지에 너무 높이 올라가고 있는 지도 몰랐다

 

아래를 내려다 보는 순간

아찔한 현기증으로 웅진독서실의 그 악몽이 나를 수십길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시킬 것이다.

 

 

과연 정상을 정복할 수있을런 지?

그리고 그 정상을 정복하는 일이 내가 추구해야 할 마땅한 일인지는 생각을 접어두자

 

지금 내가 딛는 한걸음 한걸음은 내 생애 젊은 날의 최고 기록들이 될 것이고

정상을 향한 강한 정열은

삼청동 독서실 생활에서 처럼 막걸리도 마시고 공원에 올라가 고성방가도 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힐링을 하고

합심으로 학점의 난제를 돌파하면서 이 생활에 몰입을 한다면

자연적으로 충진될 것이리라

덤으로

꿈을 같이할 여자친구를 만난다면

유학에 대한 열정은 폭발적으로 용솟음 칠 것이었다.

 

 

 

 

 

 

 

하숙생

하면 나는 우리또래 바람둥이 하숙생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문수씨의 광주1고  친구의 소개로 알게된 하숙집은

2층 목재건물로서 1층은 건물주인인 경북여고 출신 아주머니가 살고 있었고

2층을 몽땅 세를 얻어, 유아원에 다니는 딸을 가진 하숙집 아주머니가 하숙을 치고 있었는데

2층엔 방이 여러개라서

문수씨와 내가 쓰는 방 1개

바람둥이 방 1개

공군대위 방 1개

육군하사 방 1개

동거하는 초교교사 방 1개

재수생 2명이 쓰는 방 1개 등이었고

 

마당에 간이로 지어진 별채에는

하숙생들 식당겸 하숙집 아주머니가 유아원 딸을데리고 사는 방이 있었다.

 

 

바람둥이는

문수씨와 내가 도란도란 재미있게 대화의 꽃을 즐기느라고 주말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는 것이 그렇게 부럽더라고

우리의 대화방에 끼어들어 왔었다.

 

금수저 외아들인 그는

아무 대학이나 등록을 해놓고 휴학하면서 군대 영장이 나오도록 기다리고 있었는데

집에서는 대학다니는 줄 알고

대학등록금의 3배 가까이나 되는 거금의 돈을 매달 용돈으로 부쳐주다 보니

그에겐 시간과 돈이 남아도는 지라

아가씨들 사냥이나 하면서 어떻게 하면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낼까만 궁리를 하다가

가난하지만 꿈을 쫓는 우리들에게 필이 꽂힌 것이었다.

 

 

아르바이트며 학점에 쫓기는 나와는 정 반대라서

좀 같이 안놀아준다고 나와는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지만

힐링을 위하여

일요일 만은

바람둥이와 적극적으로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는 문수씨와 나를

서울 근교 계곡으로 잘 데리고 갔는데

미군부대가 가까이 있던 것으로 기억되는 퇴계원의 경치좋던 시냇물 하며

송추계곡이나 금곡계곡 강가에 텐트를 치고는 셋이서 그물로 고기를 잡아 매운탕도 끓여 먹고

하숙집 아주머니까지 대동하고 일영(분당) 딸기서리도 가는 등

남아도는 돈으로 히말라야 등반도 자주 했던 그의 레저에 대한 넓은 견문 만큼이나

서울이 생소하여 힐링하기 좋은 경기도 근교를 잘 모르던 문수씨와 나에겐 신선한 경험이었다.

기본 여비는 똑같이 부담하고 나머지 이벤트 비용은

대체로 그가 많이 부담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는

산악대 시절에 즐겨 불렀던 노래라면서

음반을 사와서 우리 하숙생들에게 산 노래를 가리키는가 하면

카드놀이에도 능해서

당시 유행하던 카드놀이 브릿지 게임을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어

일요일이면 재수생까지 포함하여 넷이서 점심 짜장면 내기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나도 그 때 배운 브릿지 게임을 학교에 가서 우리 스타디그룹 멤버들에게

가르쳐 주고 주말 방과후에 같이 브릿지게임을 하기도 했는데

당시 브릿지 게임이 얼마나 유행했냐 하면

교정 잔디가 다 죽는다고

주말이면 정원 괸리 아저씨들이 잔디에 들어가 브릿지 게임하는 학생들을 말리기 까지 했다.

 

 

 

 

김제동이 닮아 아주 사교적이었던 바람둥이는

그가 사귀다 헤어진 아가씨들이 찾아와

하숙방에 죽치는 것을

하숙집 아주머니가 그는 바람둥이라고 미련버리도록 종용하여 귀가 시킬 정도로

품행은 엉망이었다.

 

 

1층에 사는 건물주인 아주머니에게는

숙명여대 다니는, 예쁜 1학년 딸이 있었는데

바람둥이 때문에 얼마나 몸조심을 시켰던지

그 여학생과 우리는 한집에 사는 대학 1학년생 들인데도

바람둥이와 같은 하숙생이라고 문수씨와 나에게 눈도 한번 맞추어 주지 않았다.

 

 

 

 

 

내가 졸업한 부산의 경남공고 동기로서는

화학과 나온 동기가 공대 화학공학과 3학년에 재학중이었고

요업과 나온 동기는 공대 섬유공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었으며

기계과 나온 나는 공대 공업교육학과 1학년

이렇게 3명이 서울공대에 재학 중이었다.

 

셋이 같이 모인 것은 한 두번 뿐이었지만

섬유공학과 2학년인 심재익이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와 잘아는 사이라서

주말이면 재익이 하고 내가 잘 어울려 다녔는데

부산출신인 우리들은 바다가 그리워서 만났다 하면 인천 바닷가를 잘 갔지만

서해 바닷가 갯벌이 좋긴했는데

태종대의 그 푸른 바다, 부산의 향수는 달래어 지지 않았다.ㅜㅜ

그리고 우리는

서울지리를 잘 몰라

누구나 아는 뚝섬유원지나 한강 상류쪽으로 자주 놀러 다녔는데

어쩌면 그 부근에 있는 큰 유명한 제약회사 아가씨들의 부러운 시선을 즐기러 다녔는지도 모르겠다 ㅎㅎ

 

 

형님의 초교 동창인 손근식 형님을 만나러 공대 기숙사에 함 들어가 봤다.

손근식 형님은 고암면 만촌이 집으로 군 제대하고 복학하여

공대 4학년 전기과에 재학중이었다.

책상과 침대 2벌이 놓여 2인용인 기숙사는

깔끔한 것이 하숙방보다 훨씬 좋았는데 공대 3한년 쯤에나 들어갈 수 있다 했다.

 

 

나를 서울로 불러올린 성낙곤 중학교 동창은

서울농대가 수원에 있어 서울 생활에서는 한번도 만나지 못하였는데

정작 낙곤이를 만난것은

박철언씨와 강재섭씨가 실세로 굴림하던

6공시절

그의 경북고등학교 동기이던, 국회의원 강재섭씨 선거운동 좀 해 달라고

성낙곤이가 우리 중학교 동창들 만나러 대구에 내려 와서 였다.

 

 

 

방과후 스쿨버스를 타고

휘경동 하숙집에 도착하면

과외 아르바이트 하는 시간외에는  가까이 있는 경희대학교 도서관에서 살았다..

 

경희대학은 당시 국내에서 가장 아름답게 가꾸어진 대학이었다.

그리고 도서관은 소속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에게 무한정으로 개방되어 있었기 때문에

도서관 학파인 우리들에겐 더 없이 좋은 독서실이었고 휴게실 이었다.

 

가끔은 경희대 총장 조영식 박사가 도서관앞 잔디밭에서 우리 학생들과 담소하는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정원외 학생들을 대거 입학시켜 사학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맹 비난을 받았지만

국내 최고로 멋진 학원을 만들어 낸 추진력있는 교육자로서 또한 선망을 받았던

괴짜 총장님에 걸맞게

그 분은

멋진 학원을 만들어 낸 자부심이 대단하셨고

세계 대학총장회의까지 주제 하셨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경희대학 정원에 있는 수많은 수목 한그루 한그루가 모두 조 총장님의 손때가 묻은 나무들이고

나무에는 앞과 뒤가 있기 때문에

옮겨 심을 때 그 것을 잘 가려 심어야 쉽게 정착을 하고

주위 조경과도 잘 어울린다는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 기억은 군 시절

괴 소나무들로 조경이 멋진

364고지 통신중계소를  건설할때 인용되었다.^^

 

 

 

사진은 우리의 아지트 도서관이 있던 경희대 서울 캠프스 봄 풍경, 중앙부분 접시 비행기 같은 돔 부분이 당시 건설중에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