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충의 나날

불충의 나날(2) / 꿈에 부풀던 삼청동 고시원 시절

신천대로 2016. 8. 12. 16:56

 

 

서울 도착하자마자

진학지를 보고 미리 점 찍어둔 동대문 구에 있는 웅진 독서실을 찾았다.

그러나 시설은 좋지만 숙소가 없어

서울 입시생활에 적응이 되면 다시 오기로 하고

이튿날 여장을 삼청동 고시원으로 바로 옮겼다.

 

삼청동 고시원은

구한말 지어진 20여채의 한옥인데

식당과 숙소가 잘 구비되어 나 같이 지방에서 꿈을 품고 상경한 객지생들로

고시원은 늘 붐볐는데

학교 기숙사가 부족하다 보니 학부생들도 있었고

도대체 몇년째 재수를 하는 지 모를 노털들도 많았다.

 

고시원이 청와대 바로 뒷편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옛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원회관) 부근에 몰려있던 학원가와 가까와서

우리는 스리펴 끌고 학원을 오가기도 했고

경복궁과 청와대정문 사잇길을 개방 할때는

우리는 즐겨 청와대 정문앞을 어슬렁거려 학원으로 들락 거렸다.

 

박대통령과 육여사가 회외 순방이라도 갔다 오거나

행사로 시내 카퍼래이드를 마치고 청와대로 귀대할 때는

비록 방탄 창문은 닫은 상태로 였지만 청와대 진입로에서 손을 흔들어 주는

이웃주민들과 우리를 향하여 육여사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주말이면

고시원의 객지생들은 호주머닛돈을 모아서 막걸리 파티를 열곤했는데

그래서 주말이면 고시원 부근의 막걸리 집은 북세통을 이루고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한 우리들은  삼청동 공원에 몰려 올라가

한밤중에 고성방가 하는 못된짓도 조금 했고 ㅋ

삼청공원 바윗틈에서 흘러내리는 물에 발가벗고 물놀이를 하기도 했다.

 

 

마산에서 올라온 산부인과 병원집 아들인 나 또래는

몇년째 재수 하는지 모르지만

아빠인 원장이 없을 때

처녀증명서를 떼러온 예쁜 여성손님을 보러

간호원들따라 급히 하얀 까운을 입고 의사인체 하며 내진에 참여했던 이야기를 할때는

한창 정열을 주체못하던 때인 우리들이 온 말초신경을 곤두세우고

돌팔이의사 주위로 모여들었고

 

간이 화장실 창문 너머로 보이던 한옥에서

밤이면 유독히 가슴이 아름답던 여고생이 부라자만 걸치고 세수하러 수돗가를 들락거리던 모습은

우리 고시생들의 중요 표적이 되어 여고생이 떳다고 전갈이 오면

책상에 붙어있던 우리들은 떼를 지어 간이 화장실로 몰려 가곤했다. ㅎ

 

한 밤중에 자러

제일 윗동에 있던 숙소로

오르내릴때 중간 산속에 있던 화장실동을 지날때는

언제나 섬찟 하던 기억을 소재로 삼아

고시원 터줏대감 선배들이 연출한 귀신놀이에

우리들은 혼이 나가 기도 했다.

 

 

 

광주고 나온 후배 한명이 특히 나를 따랐는데

영화광인 우리둘은 짝지가 되어

일요일이면 영화보러 잘 다녔다.

 

 

 

우리는 일부러 날을 받아 당시 국내 상륙한 70미리 대형 영화

"닥터 지바고"를 보러

국내 최고의 70미리 상영관이던 대한 극장에 사전 예매해 놓고 보러갔는데

처음으로 마주한

그 웅장한 70미리 화면하며 눈덮인 광활한 시배리아 벌판에 압도된

세기의 불륜영화 라라의 태마에 흠뻑 취했던 추억은 정말 잊을 수 없다.

광주고 후배와 나는 그 후에도 70미리 영화는 다 쫓아 다니면서 보았는데

"막켄나의 황금" 도 그 때 보았으나

70미리로 봐야만 진가가 발휘되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시기적으로 그 후에 본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삼청동 고시원 시절의 최고로 기억되는 추억은 뭐니 뭐니 해도

아폴로 달 착륙 사건이 아닌가 한다.

 

 

 

당시 흑백태래비가 조금씩 보급될 때라서

고시원 생인 우리들은 태래비를 볼려면 가까운 한국일보에서 옥외 설치된 태래비를 보러가는게

고작이었지만

미 공보원에서 공산권만 빼놓고 전 세계로 생중계를 하느라고

남산 공원 야외음악당 앞에 대형 스크린을 크게 펼쳐놓고

대형 투시기로 생중계 하던 모습은 가히 서울 시민들과 호기심에 들뜬 우리들의 혼을 빼기에 충분했다.

 

 

학원을 마치면 우리는 모두 남산으로 몰려갔다.

초여름 밤을 남산 야외음악당 앞에서

비록 흑백이지만 대형 스크린에 투시되어 홀연히 하늘로 솟아오르는 우주선에 열광했고

또한

조경결 박사의 원맨쇼에 넋이 빠졋다.

조경철 박사는 정말 천문학자이기 보다는 방송인에 어울리는 탈랜트가 아닌가 한다.

서울공대 교수님들을 비롯한 쟁쟁한 석학들도

어떻게 조경철 박사앞에서는 그렇게 작아지는가?

허기사 미국에서 성공한 석학을 박대통령이 특별 초빙하여 데려온 조경철 박사이다 보니

스펙부터가 타 출연진들 보다는 월등 했으리라

근데 기질 적으로 해설가등 출연진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을 휘어잡고 빨아드리는 매력

그리고 방송분위기에 맞게 위트넘치는 유머 감각이

조경철 박사를 아폴로 박사로 만든 근간이 아닌지 모르겠다.

 

 

 

 

 

 

 

 

 

 

삼청동 고시원에 여장을 푼후 나는 광화문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원회관) 옆에 있는

 

대성학원 서울대학교 입시 종합반에

등록을 했다.

 

당시 서울대학교 합격자로 본 고등학교 등급은

 

경기고등학교   300명

경복고등학교   260명

서울고등학교   240명

 

광주제일고등   200명

경북고등학교   200명

 

부산고등학교   200명

경남고등학교   200명

............................

 

대성학원      150명

 

 

등등 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자고등학교는 제외했다

당시는 경기여고만 서울대학에 올인했고 이화여고는 이화여대로 숙명여고는 숙명여대로

지방 명문 여고는 지방국립대학으로 지원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에는 일류 대입학원으로 삼영학원과 종로학원도 있었는데

두 학원은 소수 정예를 추구 했기 때문에

모집인원이 작기도 했지만 학원 입학시험 자체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내가 관심을 두지 아니하였다.

 

학원생이 4천명이나 되던 것으로 기억되는

국내 최대의 학원, 그래서 학원재벌로 통하던

대성학원은

특이한 모의고사제도를 운영하고 있었다.

 

학과의 진도와는 전혀 관계없이

한달에 한번씩 서울대학교 입학시험과 똑같은 모의고사를 치고는

성적이 나오면 어느과에 지망할 수 있는 실력이 되는지 다달이 진학상담을 해 주고 있었다.

 

부산대학 물리학과에 들어갈 실력밖에 안되던 나는

첫 모의고사를 형편없이 치루었지만

학과의 진도가 나감에 따라 다달이 나의 모의고사 성적은 가파르게 수직상승하고 있었기 때문에

흥분이 될 정도로 나의 삼청동 고시원 시절은 희망에 불타올랐다.

 

아폴로가 달 착륙에 성공한 다음달인가

드디어

나의 대성학원 모의고사 성적은 서울공대 전자공학과 합격선(커트라인)을 넘어섰다.

모의고사 성적을 받아든 나는 열광했다.

 

대입시 까지 앞으로 남은 3개월

잘만하면 나는 서울대학 입학시험 성적에서 부터

도미유학의 청신호가 될,  멋진 기록을 수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삼청동 고시원은 객시생들의 보금자리로는 멋진 곳이지만

최고를 추구하고자 하는 고시생들에겐 주위가 산만한 곳이었으므로

3개월간

잠도 책상에 엎드려 자면서

나의 혼신을 서울대입시에 바칠 비장한 각오를 하고

드디어 숙소가 없는 웅진 독서실로 여장을 옮겼다.

 

 

 

 

당시

서울 공대 화학공학과와 전자공학과는 서울법대와 맞먹는 인기학과 였는데

비록 모의고사지만

내가 서울공대 전자공학과 캇트라인을 통과했다는 것은

문과였다면 서울법대 합격선을 통과 했다는 의미가 되므로

검정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보아집니다.

 

내가 유학을 결심하게 된것은 경제적으로 해운대 누나를 믿었기 때문이고

그기다가 공고과정 한국전력 입사시험에서 전국 수석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의 경남공고 시절 수석으로 입학한 화학과 동기가 서울공대 화학공학과에 합격하여 3학년에 제학중이었고

나의 초 중학교 동문인 강정구 고향 선배가 경남고를 거처 서울공대 화학공학과를 나와 미국에 가있었으며

후배이긴 하지만

창녕군 남지중학교 수석을 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경기고를 거쳐 서울법대(당시 사회계열)에 합격을 했으니까

 

창녕군 창녕중학교 수석으로 입학을 한 내가

고교과정으로 

대성학원을 거치면 서울공대 전자공학과에 합격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대학과정에서의 성적이 미 공보원이 지급하는 100프로 도미 유학장학금...풀 스칼라쉽...을

받을 수 있는데 까지 도달 하느냐 하는 것이었죠)

 

 

자화 자찬으로 비칠 수 있는 이 멘트를 자세히 언급하는 이유는

당시 좋은 직장 한전을 버리고 자신의 입신 출세만을 위하여 서울로 가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아버지와 형님이

그 후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것으로 압니다.

 

집안이나, 마을에 수석 합격자가  태어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닙니다.

허무맹랑하게 미국 유학을 가겠다한 내가 잘못이죠 ㅜㅜ

혹시 집안에 판사나 검사가 탄생할까 봐 기회를 주셨던

당시 아버지와 형님의 결단을 높게 봐 주십시오^^

 

 

 

 

 

 

학원비가 바싸서 그렇지 왠만한 실력이면 누구나 다닐 수 있는 대성학원, 그 사설 입시학원 나온게 뭐 대수라서 경기고등학교 나온분이나 경남고등학교 나온분과 동격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느냐고 의아해 하는 분이 있으리라 봅니다. 어쩌면 나의 글이 사설 입시학원 홍보나 하는 글로 비칠까봐 조심스럽지만 .......경기고등학교등 공립 인문학교는 선생님들이 문교부에서 배정하는 데로 충원이 될 뿐만 아니라 당시는 중등학교 교사 자리가 철밥통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사설 입시학원은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후한 보수를 내걸고 스카웃되어온 분들이고 또한 실력이 없다고 판정이나면 언제 파리 목숨이 될런지 모르다 보니까 사설학원 강사진이 막강해 질 수 밖에 없고 뒤에 다시 실제내가 겪은 이야기를 하겠지만 의심을 할 정도로 각 대학입시정보에 사설학원이 정통하였다 봅니다. 그리고 일반 인문고교는 사설 입시학원으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도 어느정도 교육다운 교육, 학생들의 소양교육을 외면 할 수 없다보니, 영리만을 위하여 입시에만 매달리는 사설학원은 교육의 질은 떨어지지만 입시하나는 .....ㅋㅋ / 경기고교가 사설학원 보다 월등히 우수하게 보이는 것은 좋은 학맥을 찾아서 모여든, 애초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월등히 우수했기 때문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