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우리가 소떼를 풀어놓고 먹이던 갈미봉 품속과 유사한 이미지가 있어 인터넷에서 퍼온 것임
그해 여름도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외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시는 산골 마을로 달렸읍니다.
산골마을, 추억이 서린 곳이지요.
..........................................
점심을 마치고 동네 소년들은 소를 몰고 울창한 대나무숲을 뒤로 한채
소먹이러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갑니다.
방학이란 해방감에 들떠서...
소등에 타고가는 또래소년들이 부러워서...
곤충채집 도구니 ,방학책등을 한아름 안고서 나도 얼떨결에 대열에 들어있읍니다.
계곡에 이르면
소년들은 소이까리(소모는 긴줄)를 소 목에 칭칭감아 이까리를 단촐하게 한후
산위로 그냥 올려 두고 자기들은 계곡에서 댐을 막아 물레방아를 돌리고
잔디밭에서 씨름등을 하거나 편을 갈라 궁깡유희(군경유희=병정놀이)라는 병정놀이에 몰두합니다.
소들은 저희들끼리 어울려 온 산의 풀을 뜯어먹으며 놀다가
해가 서산을 기울면 소년들이 있는 계곡으로 내려와 주인소년앞에 가만히 서서는
목에 감긴 이까리를 풀어주도록 기다립니다.
그러면 리더소를 선두로
소년들은 소등에 타기도 하고 소뒤에 붙어서 송아지들과 함께
저녁연기 좌욱히 퍼지는 대숲마을로 돌아들 갑니다.
..
그러나 그날은
소년들이 소이까리를 정리하여 소를 산위로 내몰자 말자
모두들 수건하나씩 들고 계곡을 향하여 뛰기 시작했읍니다.
영문도 모르고 덩달아 뛰어가고 있는 나의 등뒤에서
"인순아 너는 그기 따라가면 안돼!"
하는 소리가 들려 왔읍니다.
소년들이 달려간 계곡은 멋진 장관이 눈앞에 연출되어 있었읍니다.
폭우가 휩쓸고간 계곡에는 길고도 평탄한 청석바닥이 노출되어 있었는데
그위로 흐르는 계곡물에 물때가 끼어
아주 멋진 자연적인 미끄럼대가 만들어져 있는것 아니겠어요?
계곡물과 여름과 미끄럼대와...
소년들은 이미 발가숭이가 되어있었고
수건을 엉뎅이 밑에 깔고서는 한명한명 미끄럼대 위를 계곡 물과 함께
손살같이 미끄러져 내려 갔읍니다.
내가 미끄럼대위를 뛰어 드니까 뒤따라오는 소년이
"수건도 없이 ...궁뎅이 찢어질라!! "
벌써 경고를 두번째 받았읍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미끄럼대위를 흐르고 있었고
여름 방학이 뿜어내는 열기 에,도시소년은 너무나도 들떠있어
눈앞에 다가오는 위험은 안중에도 없었읍니다.
번지 쩜프가 이정도 쓰릴 있으랴!!
물과함께 자연속에서 계곡을 흐르는 이쓰릴은 요즘 한창인기를 날리는
급류를 타는 드래프팅 그 이상이었을 겝니다.
가속이 붙기 시작하여
이제 내몸을 조종하는 범위를 넘어서니까 겁이 나기 시작하였읍니다.
위기를 느낀 소년들이 모두 나의 향방을 놀라서 바라보고 있읍니다.
그도 그럴것이
경험이 있어 요령을 아는 산골소년들은
미끄러져 내릴때 부터 안전지대로 흘러가서는 위험지대가 닥치기 전에
청석옆 풀밭으로 올라섭니다.
그러나 경험없이 미끄럼에 그냥 따라 흘러가는 내모습은
이미 위험지대로 들어가서 가속이 엄청나게 붙어 버렸읍니다.
저희들은 한번도 들어가지 못한 위험지대에서 미끄러져 흐르고 있는 나를
경악과 호기심으로 보면서도
다가올 결과에대하여 어쩔줄 몰라하는 위기의식으로 여기저기서
발을 동동구르며 저걸어째 하는 비명소리가 나옵니다.
가눌수 없이 미끄러져 내려간 청석미끄럼대의 끝에는
낭떠러지가 기다리고 있었고
공포심으로 완전 사색이 되어 물과함께 바닥에 추락한
나는 바닥의 돌에 부딛혀 허벅지가 찢어 졌는데
찢어진 하얀살이 보이다가 곧이어 피범벅이 온 다리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읍니다.
소년들이 모였읍니다.
경악을 금치못했던 조금전과 달리 그들은 정말 침착하고도 민첩했읍니다.
경험많은 리더소년의 지시에 따라
한소년이 쑥을 뜯어서는 돌로 이겨서 약을 만들고
다른 소년은 콩잎을 따서는 두손바닥으로 비벼서 숨을 죽여 가재를 만들었읍니다.
피가 솟는 상처 부위에 짖이겨진 쑥을 붙이고
그위로 숨이죽어 물 묻은 휴지처럼 착 달라붙는 콩잎들로서 겹겹이 상처를 애워 싸고
다시 그위로 칠넝쿨(깊은 산에 있는 줄기가 굵은 칡이 아니고 논두렁등에 자라는 지름
1mm정도의 덩쿨풀)로 칭칭 감으니 지혈도 되고 병원에서 읍급처치한 것과 똑 같이
모든게 신기했읍니다.
낭떠러지 주위에는 날카롭게 삐죽삐죽 튀어나온 청석들이 즐비했는데..
도시소년에겐 참으로 위험했던 순간이 허벅지의 자그마한 상흔하나 남기고 끝나다니..
인자하셨던 외할머니, 소떼,계곡물 ,자연에 동화된 산골소년들 ,그리고 소녀하나...
내 허벅지의 보일락 말락한 상흔속에 모두 새겨져 있읍니다.
고향의 봄 (이원수 사, 홍난파 곡)
위의 글은 컴맹이었던 내가 파산을 하고 시름을 달래러 컴을 배우면서 인터넷을 접속하고 타자연습삼아 처음 써본 글 중의 하나다. 이글이 내가 접속한 사이트에서 인기를 끌자 인터넷을 통한 글에 대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에 이글은 나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글이다. 그래서 원본 그대로 수정 가필없이 올려놓았다. 기미마을에서 어릴때 갈미봉으로 소먹이러 간 추억을 그렸는데 기미마을에 대한 서술은 좀 사실적이 아니지만 나머지는 모두 그대로 이다. 기미 마을이 평야 가운데에 있어 산이 먼 탓이긴 하겠지만 거의 50두나 되는 소떼를 몰고 열을지어 2.5킬로나 멀리 떨어진 산골짝 갈미봉 품 속으로 들어가서 소를 풀어 먹이던 기미 마을의 농경 풍습은 비록 슬픈 전설이긴 해도 갈미봉을 신성시 하는 기미 마을사람들의 애틋한 정서를 느끼게 했다.
군깡유희:
6.25사변때의 전투기 공중전을 본딴 병정놀이 였는데 당시 어린이들 사이에 유행된 인기있는 놀이였기 때문에 기억을 더듬어 서술을 해본다. 10명 정도의 어린이가 모이면 5명씩 편을 가른다, 그리곤 편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리더 소년이 대장이 되고 나머지는 정찰기 전투기 센트기 구죽기(?) 등등 당시 이름을 떨쳤던 전투기 이름을 딴 역할등를 정하고 대장역을 맡은 소년은 팔 소매를 잛게 걷어부쳐 표를 하고 정찰기 역은 웃도리를 한팔을 벗은채로 입고 전투기역은 머리에 새끼줄을 매고 구죽기역은 웃도리를 홀라당 벗는다든지 하여 확실히 비행기 식별을 분명히 하고 게임을 시작한다. 양팀 두 대장이 20미터 쯤 떨어져 진을 정하고 게임이 시작되면 전투기가 날아가서 상대방 대장을 터치하면 이기는 게임인데 , 대장은 전투기한테 잡아먹히고 전투기는 정찰기 한테 잡아먹히며 정찰기는 센트기한테 잡아먹히고 센트기는 구죽기 한테 잡아먹히며 구죽기는 대장한테 잡아먹히는 먹이사슬 서열을 정해놓았끼 때문에 (대장<전투기<정찰기<센트기<구죽기<대장) 대장은 날아오는 적 전투기를 방어하기 위하여 정찰기를 옆에 배치하고 전투기는 적 정찰기의 방어망을 뚫기 위하여 센트기를 대동하여 공격을 하고 적 센트기를 제앞하기 위하여 구죽기가 날아가는 일사분란한 게임이 전개 되는데 달리기도 잘하는 팀원들의 기동력도 중요하지만 대장의 아군기 운용 용병술이 절실히 요구되는 게임이었다. 전투기에 가장 날쌔고 공격적인 팀원을 배치하고 전투기 방어용 정찰기역에 제일 어린 팀원을 배치하여 대장이 데리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고. 나이가 어릴수록 승패를 떠나 진짜 전투기가 된 기분으로 양팔을 비행기 날개처럼 벌리고 적진을 향하여 날아가는 동심에 깊이 빠져든 놀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고향의 봄/이원수 요/홍난파 곡/김치경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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