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 해운대 바닷바람은 차가왔다. 홍이는 20년이나 소식이 뜸했던 내가 방문한다니까 준공검사를 앞두고 있는, 새로 지은 교회에서 난로에 불을 피워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참 오랜만이네 인순이가 해운대 여길 다 오고...... 근데 부산은 어쩐 일이고?"
"니 공장은 어짜고 해운대 바닷가에서 이러고 있나?"
"공장이사 내 없이도 잘 돌아간다 아이가 난 주 예수그리스도에 푹 빠져있고 그래서 사재를 털어 교회를 하나 안 지었나 니도 교회에 나와래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마 사람 사는 기 아니라"
"유유자적하는 네 모습 보니 참으로 좋구나 그래 아이엠에프는 어떻게 큰 피해 없이 잘 지내갔나?"
"내라고 별수 있나 200명이나 되는 종업원 반으로 줄었다 아이가 지금은 100명 정도 만으로 공장을 돌린다."
"헉~~ 200명씩이나 북적거렸다고??"
"야 말 말아라 "삐삐" 가 전성일 때는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삐삐" 95프로에 내 제품이 독점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그때는 만들어도 만들어도 수요를 다 공급 못 해줘서 공장을 크게 지으려고 화단동 바닷가 매축지 3천 평을 매입하여 말뚝을 박았는데 이넘 아무리 박아도 바닥이 안 나타나서 결국 포기하고 지금 공장으로 이전했다 아이가"
홍이는 금속과 출신 내 고교동창인데 자수 성공한 친구들 중에는 아주 잘 풀려나가는 동창이다.
우리가 고3일 때 홍이는 나와 같이 서울의 중소기업에 취직하러 나갔다가 허리를 다쳐서 군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쉬고 있을 때에 국제시장에서 고물 무전기 수리하는 사람이 자길 찾아왔더란다.
유리조각 같은 걸 내보이며 여기에 은을 도금할 수 있으면 돈을 버는 길이 있다고 해서 홍이는 학교 실험실에 찾아가 학창시절 배운 데로 "은경" 반응을 이용하여 유리조각처럼 생긴 수정 조각에 은도금을 하여 보여주었고 그래서 그 국제시장의 사람과 동업으로 무전기의 부품 수리하는 업을 시작했단다.
사업 비전이 좋을 것 같아서 사업을 크게 키우자 하니까 꿈이 작은 국제시장의 그 사람은 사업을 크게 키우기를 원치 않아서 홍이는 대우그룹 김우중 씨가 했던 것처럼 그 사람한테 거금을 주고 사업권을 모두 인수하여 동업을 해체하고 홍이 단독으로 오늘과 같이 종업원이 100명이 넘는, 스마트폰과 무전기 부품을 생산하는 방위산업체로 키우는 데 성공했다 한다.
내가 제대 후 복학하기 전에 잠깐 아르바이트로 무전기 부품 만드는 일본회사에 근무하면서 보고들은 자료들을 모아서 홍이한테 건네주니까 홍이는 밑에 있는 전자공학을 전공한 기술부장을 대면시켜 주었다. 우리와 만나도 홍이는 건강식품이 어떻고 종교가 어떻고는 열변을 토해도 자기의 사업, 전자 부품의 기술적인 면에 대해서는 일체 노 코멘트로 일관했었다 그건 홍이가 전자공학을 전공한 적이 없기 때문인데 그만큼 홍이는 전자공학을 잘 모르면서도 첨단기술의 이 전자 부품 사업을 크게 키워 오너가 되었다는 것은 대학을 나온, 전자공학 기술에 쟁쟁한 인재들이 홍이 밑에 많이 포진하고 있다는 뜻으로 홍이의 인덕과 인력관리 능력이 탁월했음을 알 수 있다. (삼성전자 이근희 씨가 전자공학도가 아니듯이 ㅎ)
나와의 인연으로 내가 잠깐 몸담았던, 무전기 부품 만드는 일본회사 간부, 만실이를(우리의 화학기계과 동창생) 홍이가 스카웃하여 홍이 공장에 같이 일하는 인연으로도 연결되었다. |
여의도 비행장은
범람하는 한강 물 속으로
거의 잠겨가고 있었다.
삐좀히
물 위에 모습이 남아있는
활주로 한 귀퉁이에
미처
날아서 도망가지 못한
경비행기 두어대만이
퍼붓는 장맛비에 애처로이, 떨고 있었다.
68년도에 찍었다는 여의도 모습,/66년도에 우리가 서울 영등포 실습을 나갔으니까 당시의 모습 사진이라 보여집니다./흐르는 곡은 대니보이
3학년이 되면
학교에서
등교를 하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도록, 현장실습이란 명목으로, 취업을 허용해 주었으므로
신학기가 되자
우리는 시집을 가는 처녀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시집살이가 혹독하지는 않을까? 월급은 얼마나 받을 수 있을까
야간대학을 갈 수는 있을까? 등등으로 설레이던 차에
서울의 영등포 한 기업체에서 첫 취업 청탁이 왔는데
우리는 서울이라는 데에 홀려서 서로 취업 나가려고 아우성을 쳤다.
그래서
금속과에서는 내리 급장을 지낸 홍이와 관영이가
그리고 기계과에서는 내가 선발대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대구 출신의 손 씨가 경영하는
종업원 70명 정도의 영등포 공단에 있는 석판 공장이었는데
종업원은 거의 손 씨 아니면 박 씨(사모님 친정 인척) 인 가족 회사였다.
공장에 회식이 있는 날이면 평소 부르던 직책명은 간곳없고
아제 형님 오빠 동생 고모 형부 등 친족 호칭이 판을 이루었으며
그들은 거의가 농사를 짓다가 온 국민학교 졸업자들이었다.
농사밖에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집안에 특출하게 잘 풀려 공장에 성공한 친척 덕으로 친가와 처가 인척들이 버젓이 서울에 취직되어
농사 안 짓고도 먹게 살게 되었으니 공장 분위기는 보통 화기애애한 것이 아니었다.
주문이 파격적으로 늘어 사세가 확창되자
친족 이외의 제대로 배운 인재도 영입해야 되겠다는 사장단의 판단으로
공대 나온 모교 선생님과 더불어
공고 출신 우리를 첫 시범케이스로 발탁한 모양이었다.
보수는 부산의 중소기업보다는 나은 것 같았고
8시간 3교대였기 때문에 작업시간도 그렇게 무리한 것은 아니었다.
기숙사에 박혀있다가 일요일이 닥치면 우리는 서울 시가지로 몰려나가
서울사람이 되었음을 실감하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런데
우리보다 한참 늦게 군대를 막 제대한,
중학교만 나온 사장 인척이 들어와서 우리와 같은 일을 하게 되었는데
솔직히 먼저 들어왔고 공고를 나온 나보다 일을 훨씬 더 잘하는 것이었다.
막상 실습 나가면
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한 것 보다 운동을 열심히 하여 신체가 튼튼한 것이 더 각광을 받는다는
선배들의 말이 실감 났고 더구나
2~3개월 후에는 내가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산세정을 하던 염산이라는 독한 화공 약품에
허벅지가 상처를 입어 살이 썩어나가느라고
왼쪽 다리가 퉁퉁 부어올랐다.
병원에 2개월 정도 입원했다가
기숙사 내방에 누워있는데
그 여름 장맛비는 어떻게 퍼붓던지
창밖에 하염없이 내리치는 장맛비를 보면서
난 우울증에 걸려가는 나 자신을 보며 곤혹스러워 하고 있었다.
부산의 중소 기업체보다는 대우도 좋고 크긴 했지만
일이 이렇게 고되어서야,
내 체력으로는 야간대학은 엄두도 못 낼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한양공대 야간 대학을 다니는 직원이 딱 한 명 있었는데
사장의 사촌 조카이기 때문에 등록금도 회사에서 지원을 해주고
시험기에는 회사에서 봐주기 때문에 갈 수 있을 뿐이라고.....
나 같은 인척이 아닌 사람들은 야간대학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말라 했다
당시는 공업고교를 나와도 취업하기가 어렵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모교의 이미지를 위해서라도
선발대로 서울에 취업한 우리가 좋은 선례를 남겨야 했으므로
야간 대학을 갈 수 없다고 실습을 그만두고 쉽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퍼붓던 웃비가 조금 그치자
공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한강둑에
홍수에 범람하는 강물 구경을 가자고
누워있던 나에게 친구들이 데리러 왔다.
절뚝거리며 친구들 따라 둑에 올랐을 때
여의도를 거의 삼켜가는 한강의 홍수는 정말 장관이었다.
5~6개월간에 걸친
나의 3학년 1학기는 서울의 한 중소기업체에서 그렇게 흘러갔다.
나의 3학년 2학기는
여름 방학을 이용하여
교직원 연수를 하러 오신
우리 기계과 담임 김기철선생님을
상계동(공릉동?) 서울공대 교정에서 만나고부터 새로운 전기를 맞기 시작했다.
실업고등학교 3학년 담임의 권한은 막강했다.
학교 측으로 부터 몇 번 제동이 있었지만
담임선생님의 비호로 시립도서관에 죽치느라고
난 3학년 2학기를 학교에 가지 않고도 졸업할 수 있었고
그래서
조병기와 내가 한전에 들어갔는데
그 후 조병기는 서울 공대 출신도 오르기 힘든 한전 본부장까지 역임하게 되었다.
특히 지금이나 그때나 학교장 추천만으로 들어갈 수 있는 조폐공사 같은 국영기업체의 입사는
실업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 재량에 달려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내가 한전에 들어간 것은 기계과 하석호선배와 동기 최창승의 도움이 컸음을 밝혀둔다.)
담임선생님의 권한이 대단하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된 나는
장조카가 실업고등학교 2학년 때 어떤 문제로 유급을 당할 위기에 몰렸다는, 형님의 부름을 받고
부산 조카의 학교로 급히 달려 내려가
막강한 담임 선생님의 권한에
읍소로 호소하여
2학년 유급을 무마시킴과 동시에 3학년을 조카가 학교 가지 않고도 졸업할 수 있도록 선처를 이끌어 내었다.
(자신의 권위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것은 인지 상정이죠 ㅎ
당시 내가 대구에서 운영하는 기업에 조카가 실습 나간 것으로, 담임선생님이 인정만 해주면 졸업하는 데에 하자가 없었으므로 ㅎㅎ)
내 허벅지에는 서울 실습 때 다쳐서 입원했던 상처가 지금도 선명히 남아 있다.
1년인가 후에 홍이도 허리를 다쳐서 결국 그 회사를 그만두고 나와서는
군대에도 못 가고.... 초조하던 시절을 보낸 적이 있었다고 술회했다.
우리가 실습 나갔던 그 회사는 뒤에 우리 동기들이 많이 입사했던 것만 봐도 결코 조건이 나쁜 회사는 아니었다. 다만 부모님 밑에 호사롭게 컸고 군대의 혹독함으로 단련되지 않은 고졸 신입생들이 사회에 첫발을 디뎌서 즉응하는것이 쉽지 않았다는 교훈을 남겨줬고 고졸 출신들의 취업이 절실히 요구되는 요즘 우리나라 현실로 비추어 봐서도 국가적으로 갓 졸업한 고졸자 취업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신문보도로 실업고 출신자가 중소기업에 3년 근무하면 300만 원의 장려금을 준다는 반가운 뉴스도 보이는데 근무하면 줄 것이 아니라 근무하는 조건으로 미리 300만원을 지급해 놓고 연한을 채우지 못하면 1년에 100만 원씩 반납하도록 했으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된다. 우선 받아놓으면 억지로라도 3년은 채울 것이고 그러면 10중 8,9는 중소기업에 계속 근무하리라고 보기 때문에...ㅎㅎ
새로 지은 해운대 바닷가 교회에서 홍이와 헤어질 때 홍이는 교를 믿으라 하며 나에게 책을 한 보따리 안겨주었다. 인터넷상으로 뭐라하긴 그렇지만 홍이의 배려가 고마와서도 집에 와서 열심히 독파했는데 예수교 내에 여러 종파는 생겼지만 성경은 수천 년을 흘러오며 계속 번역되었어도 내용이 거의 변하지 않았다 하는 문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내가 교를 믿을 것 같았으면 예수교 계통을 믿었을 것이다 그건 이종기 덕분에 범일동 구세군 교회와 인연이 많았을 뿐 아니라 내가 기업을 할 때 독실한 교회인인 종업원한테 큰 감명을 받은 일이 있었고 나의 장모님이 독실한 교회인이셨다. 그러나 나의 어머니가 독실한 남녀호령개교 신봉자였고 나의 형제들과 집사람을 비롯한 나의 가족들이 모두 남녀 호령게교를 믿고 있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정 남녀호령개교를 믿고 싶지 않거들랑 다른 교도 믿지 말거라는 유언 때문에 난 아무 교도 안 믿고 있다.
이 글을 읽고, 홍이는 저렇게 잘 나가는데 니는 도대체 뭐 하고 있느냐고 반문하는 친구가 있을지 모르겠다. 홍이가 저렇게 잘 나가는 것은 우선은 홍이가 이방면에 뛰어났기 때문이다. 홍이의 상업적인 센스가 남달랐을 뿐 아니라 기술 중에서 가장 어렵고도 위대한 기술이 사람 관리하는 기술이라 한다. 홍이와 조병기는 모두 고등학교 3학년 반장(급장) 출신이다. 고등학교 급장은 공부도 좀은 관계있지만, 친구(사람)들이 따라 주어야 급장이 된다. 그리고 홍이는 형님이 은행 지점장이었다. 지점장인 형님의 도움 때문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형님이 잘사니까 홍이는 주위를 챙겨야 할 부담없이 지 잘살 궁리만 하면 되었다는 뜻이다. 내가 홍이 위치였다면 나는 중소기업 안 하고 카이스트나 포항공대가 생기기 전이었지만 내가 벌어 도미 유학을 갔을 것이다. 기업을 하게 된 동기와 목적이 근본적으로 서로 다르니 단순 비교는 말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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