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 부정선거 당시 유행했던 노래
가련다 떠나련다, 장면박사 홀로두고~~~ 등등으로 개사 되어 불렸죠^^
..
|
4.19의 도화선이 된 3.15 부정선거가 있던날 초등학생 이었던 나는 학교가 쉬기 때문에 그냥 끌리는 마음으로 우리마을 사람들이 투표하러 가는 대암리 원촌으로 가봤다. 둑을 넘어 토평천 강바닥 비포장도로에 들어서니까 투표를 하고 돌아오는 흰 두루막입은 어른들의 행렬이 보였는데 저 멀리서 기미 어른들이 투표를 하고 돌아오시는 것이 보였다. 난 반가운 나머지 우리 이웃집 어른을 보자 허리굽혀 넙죽 인사를 했는데 이웃집 어른은 아주 당황해 하시며 얼른 얼굴을 돌려 버리시는 게 아닌가???? 이웃집 어른 뿐만 아니라 모두가 나를 외면 하시면서 고개를 숙여 눈 시울을 훔치면서 말없이 지나가시는 것이었다. 그랬던 것이었다. 모두는 3.15부정선거의 울분을 삭이지 못하시어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흐르는 눈물을 훔치시면서 걸어 오시다가 나를 보자 대단히 당황해 하셨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40이 넘어서 나를 낳으셨으니까 내가 초등학교 다닐때는 50이 넘어 할아버지 이미지로 가억된다. 고등학교 시절 고향집에 다니러 갔다가 아버지와 내갸 쌀한말을 들고 열차를 타고 부산의 내 자치집으로 가고 있었는데 부산역에 내리자 역무원들이 큰 짐은 들고 왔더라도 화물비를 추가로 징수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내 한테 맡겨라 하시면서 쌀 한말을 손수 등에 지시고 개찰구를 나가시다가 화물비를 징수하려는 역무원의 제지를 받고는 "이 늙은 내가 아들 공부시키려고 여기까지 지고 왔는데 뭐 화물비를 받아??" 하고 화를 버럭 내시자 역무원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을 가 버렸다. 아버지의 이 기질이 마~~ 3.15부정 선거날 일을 내고야 말았으니.........ㅜㅜ 투표소에서 기표를 한 용지를 다른사람처럼 어디에 찍었는 지 참관인(??)들에게 보여 주지않고 접어서 투표함에 넣을려는 것을 옆에있던 ???가 표를 싹~~빼앗아 (아버지가 우리들에게 직접 설명하심) 어디에 찍었는지 볼려고 하자 "내가 어디 찍었던 자네가 와 남의 투표용지를 볼려고 하는데??" 하고 고함을 치시는 바람에 투표장은 아수라 장이 되었고 아버지는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되었다. 우리 기미마을에서 아버지를 위시하여 젊은 몇분의 반란표가 나왔는데 싯퍼런 자유당 독제 정권에 맞선 이 행동은 대단한 의거였지만 만약 4.19가 이어서 터지지 않았으면 아버지와 그 분들은 어떤 고초를 당할지 몰랐기 때문에 아버지를 염려하시는 동네 지인들은 젊은 분들은 그렇다 쳐도 늘그막에 몸조심 하셨으면 하고 걱정들을 하셨다. 아버지의 이 기질이 좋은데 취직했거등 부모님 용돈이나 챙겨 드리도록 하지 않으시고 내가 서울로 튀도록 허용을 하셨나 부다.
|
.
'가족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할머니의 친정 위양을 소개한 블로그를 만나다 (0) | 2020.10.07 |
---|---|
어머님(장모님)과 저녁종 (0) | 2019.01.21 |
옛 선조의 발자취(산소) 탐사 여행기(1/2) (0) | 2017.10.12 |
어머니와 대구 모노레일 지상철 (0) | 2017.03.02 |
단양우씨 어머니의 친정 / 경남 밀양군 청도면 구기리 (0) | 2016.04.13 |